파레 다치카와 아트란
파레 다치카와는 미군기지 터를 재개발하여 1994년 10월 13일에 조성되었습니다.
'기지 마을'에서 '문화 마을'로, 예술을 마을 문화의 주춧돌로 하는, 예술과 일체화된 도시 건설을 계획하여 이탈리아어 'FARE(만들다, 창조하다라는 뜻)'에 다치카와의 'T'를 더해 'FARET 다치카와'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파레 다치카와에 있는 대부분의 예술작품은 주차 공간이나 벤치, 환기구 등 기능성을 띠는 것들이며, 빌딩들 사이를 이어주듯 설치된 36개국 92명 109점의 예술작품은 20세기 말 현대 세계를 비추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파레 다치카와의 예술작품은 대중 예술의 대표적인 예로서 도화·공작 교과서에 게재되었으며, 2008년 이후 다치카와시의 초등학교 5학년 수업에 도입되어 지역의 살아있는 교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1994년도 일본도시계획학회 설계계획상을 수상하는 등 도시 계획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아 국내외 많은 사람이 시찰 목적으로 방문하고 있습니다.
다치카와 시민 중심의 자원봉사 단체 '파레 클럽'은 1997년에 결성되어 예술작품 가이드와 청소, 아티스트 워크숍 등의 활동을 하며 지금까지 약 18,600명을 안내했습니다. 파레 다치카와는 바야흐로 예술작품을 통한 도시 건설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파레 다치카와 조성 20주년을 맞이하여
파레 다치카와 아트 디렉터 기타가와 후라무
'파레 다치카와'가 만들어진 지 20년이 되었다.
재개발 사업 중 대중 예술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시민, 사업자, 행정 모두가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 및 수행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또한, 현재 일본 각지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미술로 인한 도시 부흥'의 효시이자, 해외 도시 개발의 출발점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는 점은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와 관련하여 관계자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돌이켜보면 이 아트 프로젝트가 주택도시정비공단에 의해 구상된 것은 1992년이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1989년), 소련이 해체되고(1991년), 인터넷이 온 세계로 퍼지기 시작한 즈음부터 세계화, 효율 제일주의, 세계의 균질화가 시작되었다(하지만 당시 세계는 냉전이 끝나고 안정을 취하려는 풍조였다).
이때 '파레 다치카와 아트 프로젝트'는 미술이 지닌 본질, 전 세계의 사람들은 모두 다른 인격체이며 그들이 지닌 다양성의 훌륭함과 어려움을 마을에 반영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출신이 다른 36개국 92명이 다른 방법으로 총 109점의 작품을 제작하였다(세계의 다양성을 반영한 마을).
더욱이 이것들은 작품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설치 방법과는 달리 주차 공간, 배기구, 벤치, 통로 등 각기 기능을 띤 것으로 제작되었다(기능의 예술화). 게다가 이 작품들은 5.9ha 넓이를 걸으며 즐길 수 있도록 배치되었다(놀라움과 발견의 마을).
이러한 사고방식은 도시에 한계가 보이고 지역 환경이 어려워지며, 모든 것이 균질화, 획일화되어 답답해진 요즈음 더더욱 소중하고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예술은 장소와 사람을 연결한다. 예술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연결한다. 20세기 말 다치카와의 예술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귀중한 마을 속 미술관이 되었다. 이를 사랑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다치카와 시민뿐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귀중한 보물과도 같다.
*일본어 사이트에는 더욱 상세한 정보가 게재되어 있습니다.